녹우단 뒷산 비자림에 들면… 눈과 귀로 ‘초록비’를 만난다. ‘해남’의 숨겨진 명소들 글·사진 / 박경일 (문화일보 기자) 외지인들에게 ‘해남 땅에서 가장 이름난 곳’을 묻는다면 너나없이 ‘땅 끝’을 말한다. 땅끝마을의 유명세로 해남군이 땅끝의 행정지명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에서 아예 ‘땅끝리’로 바꾸었을 정도다. 그러나 풍경만으로 치자면, 땅끝에는 이렇다 할 게 없다. 그럼에도 땅끝이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한반도 땅의 최남단이라는 장엄하고 엄숙한 의미 때문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듯 압도적인 명성을 지닌 것들은 주변의 다른 빼어난 명소를 가린다. 사실 해남은 땅끝이란 의미 말고도, 다양한 풍경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해남에는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기기묘묘한 산세의 달마산과 넉넉하게 솟아 남녘의 산들을 굽어보고 있는 두륜산이 있다. 그리고 그 산에 깃든 절집 대흥사와 미황사도 있고, 암봉 끝에 매달린 도솔암의 빼어난 정취도 있다. 또 진도로 건너가는 좁은 목에는 이순신의 명량해전의 현장인 울돌목이 있고, 녹우당에는 고산 윤선도의 자취가 남아 있다. 부릅뜬 눈에다 수염 한 가닥까지도 생생한 자화상을 남긴 윤두서가 살았던 고택도 바로 이곳 해남에 있다. 달마산 남쪽 자락에서 허공에 뜬 도솔암을 만나다 해남군 송지면 일대가 ‘땅 끝’이라면, 땅 끝을 내려다보며 솟아 있는 한반도 땅끝 지맥의 마지막 산인 해남의 달마산은 ‘산 끝’이라고 불러도 괜찮겠다. 산 능선을 따라 불쑥불쑥 솟은 달마산의 암봉은 설악이나 금강의 그것에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마저도 달마산의 기묘한 암봉을 보고는 불심을 모아 합장을 했다던가. 달마산의 암봉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는 봉우리가 도솔봉이다. 마련마을을 지나 달마산 남쪽 사면 통신탑 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로 9부 능선까지 차를 타고 오른다. 여기서 산 어깨를 도는 짙은 숲길을 따라 30분쯤 오르내리면 바위 암봉 사이에는 손바닥만 한 터를 잡아 지은 도솔암을 만난다. 어찌 저렇듯 아슬아슬한 벼랑에 암...